2005년 이후 중국에 거주한 한국인은 알게 모르게 한 유명 한류드라마의 덕을 조금씩은 다 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중종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 드라마의 인기, 딱 그만큼 더 대접을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이 드라마에 “만한전석”이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중국인이 헛웃음을 터뜨리면서 지적한 부분이기도 한데요, 이 사극의 시대에는 만한전석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드라마의 배경은 조선 중종(1488~1544) 시대였고 중국에서 처음 만한전석이 차려진 것은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1654~1722) 시대였습니다. 중국에서 백몇십 년 뒤에 생길 요리상의 이름이 한국드라마의 대사로 나왔던 것입니다. 아마도 사극의 제작진이 잠시 착각을 했거나 편의상의 용어차입이었을 것입니다.
만한전석은 청나라 강희제가 만주족 한족 구별 없이 2천8백명의 65세 이상 노인을 모시고 만주족 음식과 한족 음식을 고루 차려 3일동안 대접한 잔치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풀코스 진수성찬 상차림의 만한전석에는 강렬한 정치적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알다시피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제4대 황제가 등극할 때까지도 중국의 주류 민족인 한족은 청 황조에 적대적이었고, 그로하여 황제는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시도한 것이 강희제의 남방 순시였고 만한전석의 개발입니다. 만주족의 음식과 한족의 음식, 즉 중국 북방의 음식들과 남방의 음식들을 한 상에 차려서 만주족과 한족이 화목하게 즐긴다는 의도의 만한전석인 것입니다.
그리고 강희제는 한번 다녀오는 데 반년 넘게 걸리는 남방 순행길에 나섭니다. 만주족 출신의 황제로서 한족의 땅인 남방을 순행하면서 만주족과 한족을 한 자리에 모아 만한전석의 연회를 베풉니다.
절대다수인 한족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남방을 순행하고 만한전석을 베푼 강희제의 정치적 돌파력도 대단하고, 원수라고도 할 수 있는 만주족 정권에게 적극 협조한 한족 세력의 충심도 존경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만한전석과 황제의 남방 순행 전통은 강희제의 아들 옹정제에게 이어지고, 옹정제의 아들 건륭제에게도 이어집니다. 양보하면서 요청한 화해였고, 그 진실성의 유지였던 것이죠. 그렇게 만주족과 한족이 화합한 결과 청나라는 세계 최강 군사대국, 세계 최고 문화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한전석 차려놓고 “100% 청나라”를 만들겠다며 진심으로 고개 숙이고 도움을 요청한 만주족 강희제에게 한족 세력은 “100% 중국”을 위해 협조를 했습니다. 국론의 분열로 앞날이 내다보이지 않던 청나라를 세계 최강국으로 올려놓은 것은 일방질주가 아닌 상호 양보와 화해, 화합의 정신이었습니다.
02
다시 광복절에 만나는 대한제국 용 모양 옥새
왕조시대에는 임금의 목숨만큼, 어쩌면 임금의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이 그 나라의 인감도장인 옥새, 즉 국새였습니다. 옥새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만일 잃어버렸다면 그 왕조는 이미 망했다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백성보다도 임금보다도 소중하다고 보는 것이 왕조시대의 옥새였습니다.
1910년, 음력 경술년 8월 하순, 창덕궁 흥복헌에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개최되고 있었습니다. 흥복헌은 황제와 황후의 생활공간인 대조전의 부속건물인데요, 여기서 대한제국을 일본국에게 속국으로 넘긴다는 참으로 절통할 회의가 순종황제 주제로 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은 이미 정해진대로 나라를 넘기는 것이었고, 그 서류에 옥새를 찍어야 했습니다. 옥새를 찍지 않으면 그 서류는 효력을 발생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옥새가 없었습니다. 이때는 정말이지 나라 넘기는 것보다도 옥새 없어진 것이 더 큰 문제였을 정도로 난리가 났습니다.
옥새의 행방을 알아낸 사람은 순종황제의 비서실장 격인 시종원경 윤덕영이었습니다. 윤덕영, 이 자는 친일거두로서 순종황제의 두번째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의 친정 큰아버지였습니다.
대한제국의 옥새는 순정효황후의 치마 속에 있었습니다. 황후 윤씨가 옥새를 치마 속에 감추고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감히 누가 황후의 치마를 들출 수 있을까요? 그 무엄한 짓을 윤덕영이 합니다.
윤덕영이 감히 질녀, 즉 동생의 딸인 황후의 치마를 들추면서 옥새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른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장 150센티 단신의 순정효황후는 큰아버지의 손이 더 깊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윤덕영은 빈 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고 「한일합방」의 서류에 옥새를 찍을 수 없었습니다. 대한제국과 일본국을 합친다는 문서에 대한제국 옥새가 찍혀 있지 않으니 「한일합방」은 원천무효인 것입니다. 이렇게 지켜낸 옥새. 그러나 이 옥새는 6⦁25전쟁 때 갑자기 사라지고맙니다.
이 옥새가 한국인의 관심에 다시 들어온 것은 2010년대 초였습니다. 한 미국인이 소장하고 있던 대한제국 국새를 미국 국토안보부 수사국이 압수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6⦁25전쟁 와중에 도난을 당했고 미국까지 흘러갔던 것입니다.
이 대한제국 옥새는 2014년 박근혜 오바마, 한미정상회담 때 문정왕후 어보 등 다른 조선왕실 인장 8점과 함께 한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거북 모양 조선 왕의 옥새에서 용 모양으로 바뀐 대한제국 황제의 옥새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대한제국 황제의 용 모양 옥새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다만 올해도 어김없이 광복절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기운이 승천하는 용처럼 치솟아 올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03
역사적 스토리와 교육적 스토리
길게 잡아도 5년 주기로 거듭 방송 극화되는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당대 최고 미모의 여배우에게 그 배역이 주어졌던 장희빈 스토리입니다. 최근에는 방송 사극의 흐름이 정통사극보다 창작사극으로 이동하면서 장희빈으로 명시된 드라마가 없어진 듯 합니다만. 하여튼 5년마다 한번씩 같은 이야기를 해도 흥행이 되기 때문에 제작사는 그 뻔한 내용에 거금의 투자를 하고 최고 미녀배우는 그 배역에 캐스팅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5년 전의 장희빈과 5년 후의 장희빈은 배우 뿐만 아니라 인물 자체의 성격도 달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드라마라 할지라도 시대의 공기(公器)인 방송사가 제작하는 드라마에서는 그 스토리나 인물에 시대의 의미를 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가정불화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시기에 기획되고 제작되는 장희빈이라면 가정불화의 희생자인 인현왕후의 비극에 초점이 맞춰질 것입니다. 한편 여성의 권익문제나 신분차별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시기에 기획되고 제작되는 장희빈이라면 극한적인 신분상승을 한 그녀의 빛나는 성공과 몰락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사회적 이슈의 변수가 있다 해도 바꿀 수 없는 본질 하나는 있습니다. 그것은 장희빈은 착하고 인현왕후는 야비했다고 꾸밀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장희빈이 착하고 인현왕후가 야비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인 출신의 장희빈은 결국 역사의 패자가 되고 정치 명문가 출신의 인현왕후는 결국 승자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장희빈은 나쁘고 인현왕후는 착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가 아닌 역사적 스토리이고 교육이 아닌 교육적 스토리입니다.
역사에는 권선징악 교육용의 인물이 더러 있습니다. 좋은 교육 소재가 되므로 영원히 나쁜 사람으로 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도 사랑과 이해와 관용을.
04
나라 그리고 우리
나라를 세우는 데는 천년세월의 인고로도 부족하지만 나라를 잃는 데는 한 순간의 실수로도 충분합니다. 우리 인생은 이와 다를까요?
05
어제는 어디로 가고 없는 것일까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소년의 시간과 노년의 시간이 다르고, 건강한 이의 시간과 아픈 이의 시간이 같을 수 없습니다. 한 집에 살아도 할아버지의 시간, 아버지의 시간, 아들의 시간이 다르고, 남편의 시간과 아내의 시간이 다릅니다. 시간은 참으로 세대별로 처지별로 지나간다고 할까요? 어릴 땐 공부 다하고 반항까지 해도 남아돌던 시간, 젊을 땐 할 일 다하고 방황까지 해도 연애할 틈이 있던 시간, 늙은 날엔 일 한 가지 하고나면 하루가 가고 없는, 바로 이 것이 세대별의 시간입니다. 살아낸 세월만큼 사람이 느려지는 것일까요, 시간이 빨라지는 것일까요?
산간계곡의 맑은 물은 주변경관 다 둘러보고 졸졸졸졸 자기 흐르는 소리까지 다 들으면서 강으로 흘러갑니다. 마치 어리고 젊은 날의 명징한 시간처럼요. 흐르다보니 절로 탁류가 된 강물은 세상 온갖 데서 흘러온 물들과 두루뭉수리로 마구 뒤섞여서 자기 존재도 없이 숨쉬고 구경할 겨를도 없이 그냥 뒷물에 떠밀려 바다로 쓸려가고 있습니다. 마치 중년 이후의 인생과도 같이요.
햇살도 연초의 햇살과 연말의 햇살이 다르고, 인간은 옛날의 인간과 오늘날의 인간이 다릅니다. 인간이 다르니 세상사가 달라졌습니다. 질풍노도의 오래 된 역사 속엔 영웅호걸도 많았는데 개개인의 프로그램이 시대의 주인공으로 작용하는 오늘날엔 천하를 호령하는 카리스마보다 즉효성 실효성의 작은 지혜들이 더 빛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문화적이고 문명된 이 시대에 내 앞의 시간을 응시하면서 어제를 돌아보게 됩니다. 어제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제를 많이 겪은 이는 압니다. 어제가 내일로 돌아온다는 것을요
06
그 겨울의 고니
중국 강소성 무석시의 한 생태공원 호수에 암수 한 쌍의 고니와 일곱 마리의 오리가 살았습니다. 일곱 마리 오리는 서로 떨어지는 법이 없이 항상 한 무리로 뭉쳐서 동동동동 오쫄오쫄 떠 다녔고 한 쌍의 고니는 저만큼 떨어져서 저들대로 남실남실 떠 다녔습니다. 그러다 함께 어울리면 당연한 질서인 듯이 고니 부부는 앞장서고 오리 형제들은 뒤를 따랐습니다. 아리리리리리! 공원 관리인이 먹이 먹으러 오라고 부를 때도 우아한 고니 부부 앞서고 오종종한 오리 형제 뒤따르는, 스스로 이루어낸 질서를 깨뜨리지 않았습니다.
그 여름이 가고 가을바람이 일자 호수에 물이랑이 선명해지고 물흐름도 빨라졌습니다. 고니 부부와 오리 형제의 유영은 여전히 아름다운 질서였습니다. 그런데... 질서는 아주 엉뚱한 데서 깨어졌습니다. 여름 내내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낸 이동식 분수의 위치를 이전하는 공사가 있던 날 우아한 아내 고니가 전기에 감전되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아내 고니를 잃은 남편 고니는 사방을 향해 목을 빼고 울었습니다. 밤낮 없이 울어, 보거나 듣는 사람이 다 괴로울 지경이었습니다. 온 호수를 헤매다니며 사방으로 목을 빼고 꽤액꽤액 아내 찾아 울었습니다. 쉬어버린 목으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해 겨울, 다시 홀아비 고니를 만났습니다. 오리들을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놀러 나온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는 오리들에 밀려서 거의 받아먹지 못 했습니다. 원래 혼자였다는 듯이 원래 오리한테도 밀렸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워 울고 서러워 울더니 끝내 아내 따라 가고 말더라’는 신화를 기대하는 인간의 마음을 가차 없이 배반하고.
그 후, 그 생태공원에 차마 갈 수 없었습니다.
07
시지프스의 형벌
온갖 막 돼먹은 언행을 일삼고 살면서 세상의 부귀공명 다 누리는 사람이 있고 평생을 바른 언행만 하고 살았는데도 세상의 고통 다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가꾼만큼 열매를 다 따먹는 사람이 있고 평생 고되게 살았는데도 열매같은 열매 한번 제대로 못 따먹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스신화에 시지프스라는 이름이 등장을 합니다.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올리고 밀어올리고 또 밀어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 오만방자하게 살면서 신들을 속인 죄로 받은 형벌이었지요. 큰 바위를 죽을 힘을 다해 산꼭대기에 올려놓으면 신이 그것을 산 밑으로 내던져버리고, 시지프스는 다시 산 밑에서 산꼭대기로 밀어올리고, 끝없이 끝없이 그 일을 되풀이 해야 하는 형벌이었습니다. 자기 앞의 행운을 고마운 줄도 모르고 남용한 죄, 자기 재주만 믿고 신들을 속이고 조롱한 죄... 그 죄의 대가였습니다.
시지프스. 그것은 ‘나’의 과거 모습일 수도 있고, 현재 온갖 것 다 누리는 사람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사람이 나고 죽고 두세 번을 거듭하면 그중 한번은 ‘나’도 ‘너’도 시지프스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권세를 가지고서도 오만하지 않을 인간이 드물고 이익 앞에 교활하지 않을 인간이 드물며, 죄와 벌은 인간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므로.
‘시지프스의 형벌’은 영원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죄와 벌의 엄중함도 교육상으로 중요한 것이고, 고진감래의 교훈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시지프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절망적인 형벌을 묵묵히 견뎌 그 죄의 대가를 다 치른 뒤에 홀가분한 자유인이 되는 보람도 누리게 되어 있다고 봅니다.
7년 가뭄에 비 안 온 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어려워도 어려운 와중에서 잠시잠깐 근심을 잊을 일은 있는 법이지요. 그런 작은 위안에 의지하여 큰 어려움을 잊고 노력하다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방법은 단하나, 현실의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는 것 뿐입니다. 9년 장마에 볕 안 든 날이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죽으라 죽으라 하면서도 아주 죽이는 법은 없습니다. 참고 견디면 옛말 할 날, 좋은 날이 옵니다.
08
이고 진 저 어린이, 짐 벗어 나를 주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학생들의 방학이 지금 한창 구수하게 무르익고 있습니다. 깊을대로 깊어져서, 깊이 편안해서 이대로 안식해 버리고 싶을 수도 있겠습니다. 배움의 길에서 만나는 또다른 배움의 기간에 관한 얘기입니다.
방학. 이 단어를 글짜 그대로 풀어보면 놓을 방(放), 배울 학(學), 배움을 내려놓는다는 뜻이 됩니다. 내려놓을만큼 짊어진 배움의 무게가 무겁다는 것일까요? 유치원 아이는 한 학기 동안 노래 배우고 춤 배운 게 너무 무거워서 그걸 잠시 내려놓아야 하고 고등학생은 한 학기 동안 배운 입시공부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그걸 또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요?
시골아이가 방과 후에 시골길을 탈레탈레 걸어서 집으로 가는 광경을 차를 몰고 그 옆을 휭하니 지나치면서 보게 됩니다. 책가방을 메고 하염없이 걸어서 집으로 가는 그 동안에 아이의 머리 속에 무엇이 담길까요? 뙤약볕도 북풍한설도 피할 길 없이 그대로 그 어린 몸으로 맞으며 걸어갈 때 그 머리 속에 무엇이 담기고 무엇이 비워질까요? 아마도 우주가 담기고 우주가 비워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혼자 걸어가는 길, 혼자 배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혼자서 인터넷을 하고 혼자서 게임을 하고 혼자서 스마트폰을 다루면, 그것을 아이 혼자서 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 과정의 몰입이 머리를 비우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요? 꽉 찬 머리를 더 꽉 채우는 행위라고 한다면 억지 논리일까요?
머리를 비워야 다시 더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방학은 한 학기 동안 채운 머리를 잠시 비우라고 있는 과정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아이가 비우고 있을 동안에 남의 아이는 더 많이 꽉꽉 채우고 있을까봐 불안합니다. 과연 정답이 없는 교육의 문제입니다.
09
황금새 이야기
옛날옛적에 한 가난한 가장이 가족의 먹을 것을 구하려다가 사고로 죽었습니다. 가난에 한이 맺혔던 이 가장은 죽어서 한 마리의 황금새가 되었습니다.
“여보 임자, 내가 왔소. 얘들아, 애비가 왔다.”
황금새는 살아생전의 집 마당에 날아왔습니다. 식구들이 여전히 헐벗고 굶주린 모습으로 양지쪽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황금새는 마당에 황금깃털 하나를 떨구어주고 갔습니다. 난데없이 떨어진 황금깃털을 줍게 된 식구는 그것을 팔아 양식을 샀습니다.
이튿날도 황금새는 생전의 집 마당으로 날아왔습니다.
“어제 내가 준 깃털을 팔아 밥을 지어 먹었구나, 배 곯지 않고 밥을 해 먹었구나.”
황금새는 다시 황금깃털 하나를 뽑아 마당에 던져주고 날아갔습니다. 식구는 또 난데없이 떨어진 황금깃털을 들고가서 팔아 새 옷을 사 입었습니다.
다음 날도 황금새는 옛 집의 마당에 깃털 하나를 뽑아 던져주고 날아갔습니다. 식구는 그것을 팔아 새 이불을 샀습니다. 그 다음 날도 황금새는 깃털 하나를 뽑아 던져주었고 식구는 그것으로 가재도구를 샀습니다.
마당에 떨어지는 황금깃털이 황금새의 날개짓 때문인 걸 알게 된 식구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놈의 황금새가 저러다가 어느 날 다른 집으로 날아가서 저 짓을 하면 그 깃털은 우리 것이 아니잖아.” “황금새가 갑자기 병이 나서 죽어버릴 수도 있어.” “우리가 저놈의 황금새를 잡아버리자.” “덫을 놓고 기다리다가 잡아서는 털을 한 올도 남기지 말고 다 뽑아버리자.” “그래그래, 그게 좋겠다, 그렇게 하자.”
황금새는 식구들이 그런 흉계를 꾸미고 있는 줄을 몰랐고, 식구들은 그 흉계를 실천에 옮겼습니다.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황금새의 깃털을 식구들은 탐욕스럽게 뽑아댔습니다. “잘 붙잡아, 놓칠라!” “이놈아, 애비여!” “한 올도 빼놓지 말고 팍팍 뽑아!” “이 여편네야, 나여 나!”
엄동설한이었습니다. 깃털 뽑혀 날지도 못하게 된 황금새는 맨몸뚱이로 얼어붙은 맨땅바닥을 구르고 굴러서 피 흘리며 떠나갔습니다.
10
빌헬름 텔의 화살
우리가 활[弓]로 유명한 민족이어서 명궁(名弓)의 얘기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만 유럽에도 명궁의 얘기가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설의 로빈후드도 있고 실존인물을 모델로 했으면서 신화적인 존재가 된 빌헬름 텔도 있지요. 빌헬름 텔은 활로 아들의 머리 위에 얹은 사과를 쏘아 맞히는 시험에 들었던 인물입니다. 스위스가 오스트리아의 식민지였던 시절, 나룻터 길목에 걸어놓은 총독의 모자(帽子)에게 절을 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빌헬름 텔이 받은 형벌은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활로 쏘아 맞히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활로 쏘아 맞혀야 하는 엄청난 시험에 들었던 빌헬름 텔. 이 스토리를 패러디한 텔레비전 광고가 오래 전 우리나라에 있었습니다. 이 광고에서 머리에 사과를 얹어놓고 날아오는 화살을 맞이해야 할 운명의 인물은 아들이 아니라 아내였습니다. 아내의 머리 위에 얹힌 사과를 쏘아 맞혀야 할 운명의 남편. 이 광고가 노리는 효과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위험에 처한 인물이 아들이 아니라 아내이기 때문에 그다지 긴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아내가 죽으면 화장실에 가서 몰래 웃는다’는 식의 못된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부부관계가 극단적으로 희화화(戱畵化) 되던 시절이었으니 망정이지 요즘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 아주 발칙한 상상력의 망동이라 할만한 일입니다.
사실, 부부관계가 희화화 되기로는 요즘이 그 당시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인터넷에 오르내리는 얘기들, 농담삼아 진담삼아 전달되는 얘기들, 끼니 때 놓치지 않고 밥 다 챙겨 먹는다는 ‘삼식이’가 있질 않나, 하여튼 요즘엔 활을 든 남편과 머리 위에 사과 얹은 아내의 역할이 바뀌고 있는 듯 합니다. 역습이랄까 반전이랄까, 세계 최강 여자양궁의 한국입니다. 일상에서도 여자 궁수(弓手)의 얘기가 나올만한 시점인 것이지요. 아내가 활을 들고 남편 머리 위의 사과를 쏘아 맞히는 설정이라야, 낡은 소재이지만 그나마 어느 정도 시선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일까요?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면 이 세상 모든 남편과 모든 아내가 다 함께 비참해지는 느낌입니다. 존재 자체가 농담꺼리로 전락해 버렸으니까요.
11
그대 견우 그리고 직녀
밤하늘을 보게 됩니다. 칠월칠석의 오작교를 찾아봅니다.
견우와 직녀는 3천년 전 고대 중국 주나라의 놀라운 천문우주과학 기술과 이야기산업이 합작을 한, 인류의 명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떨어져 마주 바라보는 독수리별자리 알타이르별과 거문고별자리 베가별을 3천년 전의 중국인은 견우별과 직녀별로 보았습니다. 두 별이 1년에 한번 음력 칠월칠석 무렵에 한 자리에 겹쳐져 보인다는 사실을 고대 중국 주나라 천문우주과학 기술이 알아낸 것이지요. 1년에 한번 만나는 두 별의 이동상황에다 견우 직녀의 사연을 만들어 붙인 것은 당시 중국 이야기산업의 힘이었습니다.
칠월칠석의 전설이 오늘날과 같은 스토리로 형성되고 관련 풍속들이 다양하게 확립된 것은 중국 한나라 시대였습니다. 우리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천문도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한반도에 칠석설화가 전해진 것도 이 무렵인 것 같습니다. 이어서 일본에도 전해져서 견우와 직녀는 동아시아 정신세계의 상징적인 선남선녀가 되었던 것입니다.
옥황상제가 신임한 착한 농부 견우, 옥황상제의 금지옥엽 예쁜 딸 직녀. 이들 선남선녀는 옥황상제의 허락을 받은 부부였지만 그 부부금슬이 너무나 유별나서 일은 하지 않고 하루종일 붙어 끼고 안고 희희낙락만 하므로 벌을 받게 되었는데요, 은하수 이쪽 저쪽으로 떨어져 1년에 한번만 만나는 형벌인 것입니다. 단하루 허락된 만남의 날 견우와 직녀가 건너는 은하수 다리 오작교. 이 별바다 다리를 까마귀와 까치가 만듭니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오랜 세월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를 듣고 살았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같이 듣고 살았어도 동아시아는 지금 한 마음이 아닙니다. 동아시아 사람들을 한 줄기의 정으로 이어주는 오작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칠석이 지나 여드렛날이 밝아도 끊어지지 않는 사랑의 오작교를 말입니다.
12
세상에서 가장 씩씩한 여자강아지
중국 강소성 무석의 숲이 좋은 신주화원에서 6개월 가까이 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한 강아지를 알았습니다. 한국 토종 바둑이를 닮았지만 치와와였고, 여자 강아지였는데 이름이 동돌이였습니다.
동돌이의 집은 아파트단지 내 중국동포의 한국마트였습니다. 동돌이는 그 마트의 한쪽 구석 방에서 혼자 자고 혼자 일어나 혼자 놀았습니다. 아빠 엄마는 강소성 상주에서 다른 사업을 벌였기 때문에 친척오빠에게 마트 운영을 맡겼고, 친척오빠는 다른 데서 잠을 자면서 출퇴근을 했기 때문이었지요.
동돌이는 아주 예쁘고 착하고 씩씩하고 튼튼한 바둑이형 치와와였지만 몸이 청결하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동돌이가 우리 부부와 친해진 것은 아내가 동돌이를 데려와 목욕을 시켜준 일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번 와서 목욕을 하고 돌아간 우리 집을 동돌이가 어떻게 기억을 했을까요? 늦가을 바람이 몹시 불던 날 현관문에서 웬 낯선 소리가 들려서 빼꼼히 내다보았더니 아 글쎄 동돌이가 그 좁은 문 틈으로 쏜살처럼 뛰어들어와 거실로 내달려 온 것입니다. 집이 아무리 2층에 있었다 해도 마트에서 오자면 길이 제법 되는데 동돌이가 어떻게 찾아온 것일까요? 여러 동의 아파트 건물과 숲길을 돌고 돌아서, 기껏 목욕 대접 한번 받고 돌아갔던 우리집을...?
동돌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신나게 달리는 강아지였습니다. 동돌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씩씩한 강아지였습니다. 그런데 동돌이는 엄마한테 안기거나 목줄 메여 다니는 애완견만 보면 겁이 나서 달아나는 강아지였습니다. 동돌이는 엄마와 함께 있는 강아지 앞에서는 기가 죽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것은 엄마 없는 아이라는 사실을 동돌이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그 해 겨울 우리 부부는 한 달 가량 한국에 갔다 돌아왔는데 그 동안에 동돌이네는 이사를 가고 없었습니다. 가게는 폐쇄되어 있었고, 동돌이네가 간 곳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씩씩한 여자 강아지 동돌이가 있는 곳을 누구 모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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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보물창고
이웃에 오래 된 속담을 많이 알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하도 오래 돼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아주 진귀한 속담을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곧잘 응용하는 분입니다. 최근에 그 분에게서 들은 속담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방구 질 나자 보리쌀 떨어진다”
이 속담을 풀이하면 ‘방귀라도 뀔만하자 보리쌀이 떨어진다’, 혹은 ‘이제 겨우 방귀라도 뀌게 됐는데 보리쌀이 떨어진다’ 는 뜻이 되겠습니다. 왜 방귀와 보리쌀을 대비시킨 것일까요? 보리밥을 먹으면 방귀가 나온다는 옛말이 있는데, 보리밥이 흰 쌀밥보다 소화가 잘 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었다고 하죠? 아시다시피 그다지 오래지 않은 옛날만 해도 쌀밥은 부자가 먹고 보리밥은 가난한 사람이 먹는 것으로 인식되어졌고, 그나마 보릿고개란 것도 있었습니다. 보리가 익기 전인 봄날이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게 되는데, 배고파 허기진 이 시기를 우리 선조들은 보릿고개라고 했던 것이구요, 겨우 보리밥이나마 먹어 방귀라도 뀌게 되었는데 보리쌀이 떨어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굶어 죽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기막힌 사정이 없을텐데도 우리네 속담은 이처럼 해학적으로 풀이했습니다. 이 속담의 숨은 뜻은 무엇일까요? ‘분수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알라’는 것입니다. ‘분수 모르고 까불더니 꼴 좋다’ 는 것입니다.
우리네 속담의 교훈은 아주 간단하고 화끈합니다. 어떤 사안의 핵심을 우리네 속담만큼 간단명료, 화끈, 확실하게 콕 집어내는 것이 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속담은 세상의 온갖 이치를 거칠지만 선명한 한 호흡의 메시지로서 다 전달해냅니다.
보리쌀 떨어진 사정의 속담을 필자에게 가르쳐 주신 분은 그 속담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에게서 들었다고 합니다. 무궁무진하게 구비한 속담을 일상 생활용어인 양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구사하던 친정어머니는 그야말로 ‘속담의 보물창고’였는데 이제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고 합니다. 우리네 속담의 보물창고는 그렇게 속절없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속담을 하찮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동안에, 속담의 예리하고 재미난 교훈을 무시하는 사이에.